오늘은 5 월 5 일 ‘어린이 날’ 이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예년과는 다른 ‘어린이 날’이다.
예년과 달리 코로나 19라는 전염병에 전세계가 신음하고 있기 때문에 어린이날 이야기 역시 과거 인류가 겪었던 – 유럽 인구의 1/3이 목숨을 잃었던 -흑사병( 페스트)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로 생각했다.
당연히 이야기가 꿈과 희망이 넘치는 이야기는 아니다. 비극의 이야기다. 무려 130여 명의 아이들이 집단으로 납치 된 비극적 사건이다. 유럽 중세의 이야기이다. 지금부터 700 년 전, 13 세기의 이야기이다.
이쯤이면 이미 눈치챈 분도 있을 것이다. 독일 북부의 도시 하멜른에서 발생한 ‘사건’인 이른바 ‘하멜른의 쥐잡이(독일어: Rattenfänger von Hameln 라텐펭거 폰 하멜른) 이야기다. 한국으로 번역되어 들어오는 과정에서 영어권 문서를 거쳐서 ‘피리 부는 사나이’ 로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코로나 이후 – 애프터 코로나를 생각할때, 우리시대의 이야기가 어떻게 후대에 상상되어 질지 생각하기 위해, 과거 페스트가 후대에 어떤식의 상상력으로 변천되었는지 고고학적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멜른의 쥐잡이는 지금부터 736 년 전인 1284 년 6 월 26 일, 독일 북부의 도시 하멜른에서 어린이가 130 명이나 집단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다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밝혀지고있는 것은 거기 까지다.
언제, 어디서, 누가 사라 졌는가까지 알고 있다. 그렇다고해도, 실종 된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실종된 것인지, 어디 갔다, 왜 130 명의 함께 증발 해 버린 것인지까지는 지금도 모른다.
우리가 오늘날 아는 ‘피리부는 사나이’ 이야기는 “유명한 쥐 잡는 남자 ‘라는 선전으로 하멜른에 나타난 남자이야기다. 사람들은 그를 환영했다. 그는 약속대로 쥐를 구제해 보였다. 그러나 약속의 보수가 지급되지 않았음에 화가 난 쥐 잡이 남자는 피리를 불어 아이들을 이끌고 그대로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돌아온 것은 귀는 들리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어린이와 눈은 보이지만 귀머거리 어린이 2 명뿐이었다.
중세 후기 13 세기의 아이들이 사라진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이것이 이야기의 핵심이되고, ‘피리’와 ‘쥐잡이’ 라는 부분이 후대에 추가된 것이다.
“피리 부는 남자 전설’에서 ‘쥐 잡기 남자 전설 ‘로 변모하게 된 것은 16 세기 전반에 도시 하멜른 겪은 흑사병 (페스트) 등 인간이 통제할 수없는 재해가 반영 것이다. – 페스트는 쥐를 통해 전염된다- 이 당시의 자연재해와 전염병의 만연은 장난이 아니었다.
민중이 겪는 어려운 상황에 더 괴로움을 더한 것은 16 세기 초반 독일에서 시작된 ‘종교 개혁’이었다. 하멜은 도시 전체가 루터교였지만 , 기독교인끼리의 「종교 전쟁」에 휘말려 당연한 듯이 사람이 살해되어 갔다.
코로나 19를 겪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 사는 것 자체가 힘든 시절이었다.
당시 성벽 사회의 하층민들의 삶은 비참했고, 경찰 제도의 탄생 이전이므로 사람들의 자력 구제는 당연한 시대였다. 납치되어도 자력 구제가 아니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던 시절이다.
이런 보이지 않는 사회 구조속에서 전염병에 걸려 죽어가고, 굶주림과 폭력과 살인에 죽어가며 두려운 삶에 신음하던 민중들의 절규가 130명의 아이들의 납치 사건을 피리부는 쥐잡이 사나이라는 이야기로 만들어 낸 것이다.
코로나 19시대 . 21세기의 우리도 매일 역사를 만들고 있다. 우리는 역사에 어떤 이야기로 후대에 우리 21세기 사회의 취약한 곳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구조를 보여줄 것인가?
혹시 요양원에서 코로나 19가 두려워 도망간 무책임한 직원 때문에 굶어 죽어간 노인들의 이야기가 나오진 않을까?
또는 코로나로 죽어 가기 직전 절규가 치료비는 누가 낼 것인가를 외치다 죽어간 많은 미국인들의 이야기가 숨어 나오진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