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articles Articles posted in 여러가지 문제 연구소

국난의 극복과 음악의 역활

국난의 극복과 음악의 역활

임진왜란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중요한 역활을 한 사람으로 우리는 유성룡과 함께 이원익을 빼 놓을 수 없다. 특히 이원익은 계속되는 국난속에서 모든 위기 극복의 중추였던 분이셨다. 그는 거문고를 즐겨 탓다. 그를 위해 지은 관감당 안에는 지금도 그가 올라가 거문고를 탔다는 탄금암(彈琴岩)이라는 바위가보존돼 있다. 이원익 선생의 문집인 <오리집> 에도 선생이 서울 동숭동 인근에 사실 때 자주 낙산에 올라 거문고 연주를 즐기셨다고 하며 , 또한 이원익의 5대손 이인복의 문집에도 <문충공유금내력전말기>라는 글이 있어 선생이 거문고를 좋아하셨음을 알려준다. 이원익의 공무 생활기간은 평안한 기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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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천하에 조선여인의 정절이 어디로 갔는가?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천하에 조선여인의 정절이 어디로 갔는가?

스피카 (SPICA) 의 You Don’t Love Me 를 보다가 참 기겁을 했다. 여인들이 마구 엉덩이를 흔들어 대는데!! 아 민망하여라!!! 국난을 이겨온 조선의 힘은 조선 여인들의 매난국죽(梅蘭菊竹) 같은 정절의 정신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피난시에 뱃사공의 손을 잡았다는 이유만으로 수치심에 자결할 정도의 조선 여인의 정절이 국난 극복의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그 소중한 여성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당연히 남성들은 목숨을 걸고 나라와 여인을 지키기 위해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을 극복한 것이다. 이렇게 딧따 큰 궁디 흔들라고 나라를 지킨것이 아니다. 아! 천하에 여인의 정절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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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딘의 두마리 까마귀가 언론에게 주는 교훈

오딘의 두마리 까마귀가 언론에게 주는 교훈

북유럽 바이킹들의 신인 오딘은  여러 국가들로 나눠진 북유럽이었지만 공통된 가치관으로 사회를 통합하며 고대 그리스 보다 더 정교한 민주주의를 만들어 이끌어 주던 북유럽의 나오는 주신(主神) 개념 이다. 오딘이 신으로서 가진 놀라운 능력으로 오딘은 후긴(Huginn: 감정, 사고)과 무닌(Munnin:기억)이라는 두 마리의 까마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두 까마귀가 하루종일 세상을 정찰하고 저녁에는 오딘에게 이야기해준다. 후긴은 감정과 사고의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 무닌은 역사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 뉴스가 종합되어 전달된다. 그리고 오딘은 이것을 균형있게 판단하여 신적인 판단을 한다. 변화하는 세상의 정보를 정통성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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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음식 – 소울 푸드 (Soul food)

노예의 음식 – 소울 푸드 (Soul food)

몇년전 통큰 치킨 열풍이 있을때, 나두 운동 후 프라이드 치킨을 하나씩 마트에서 사먹곤 했다. 그때 기다리는데 흑인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앞에서 프렌치 프라이를 주문했다. 이때 푸라이드 치킨을 보고, 흑인 손자가 치킨!! 치킨!! 하면서 사달라고 조르드라. 할아버지는 얼마냐고 물어보고, 가격을 듣고는 고개를 절래 절래 저으면서 프렌치 프라이만 사더라. 내가 사주고 싶더라. 흑인들은 프렌치 프라이 등 튀긴 음식을 좋아한다. 더구나 튀긴 기름에 향이 있다고 그걸 또 사용해서 튀긴다. 아침에 베이컨등 튀긴 기름 따로 보관했다 저녁에 또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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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과 마르크스주의 예술관

떡국과 마르크스주의 예술관

百結先生(백결선생) 不知何許人(불지하허인) 居狼山下(거랑산하) 家極貧(가극빈) 衣百結若懸鶉(의백결약현순) 時人號爲東里百結先生(시인호위동리백결선) 嘗慕榮啓期之爲人(상모영계기지위인) 以琴自隨(이금자수) 凡喜怒悲歡不平之事(범희노비환불평지사) 皆以琴宣之(개이금선지) 歲將暮(세장모) 鄰里舂粟(린리용속) 其妻聞杵聲曰(기처문저성왈) 人皆有粟舂之(인개유속용지) 我獨無焉(아독무언) 何以卒歲(하이졸세) 先生仰天嘆曰(선생앙천탄왈) 夫死生有命(부사생유명) 富貴在天(부귀재천) 其來也不可拒(기래야불가거) 其往也不可追(기왕야불가추) 汝何償乎(여하상호) 吾爲汝(오위여) 作杵聲以慰之(작저성이위지) 乃鼓琴作杵聲(내고금작저성) 世傳之(세전지) 名爲碓樂(명위대락) 백결선생(百結先生)은 어찌한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낭산 기슭에 살았는데, 집안이 매우 가난했고, 옷을 백 번 씩 기워 입어 이에 사람들이 동네의 백결 선생이라고 불렀다. 일찍이 영계기의 됨됨이를 존경해서 거문고를 추구하며 무릇 즐거움, 노여움, 슬픔, 기쁨, 불평을 모두 거문고로 표현했다. 어느 연말에 동네 이웃들이 곡식을 방아질하자 그 아내가 절구 소리를 듣고 말하길, “남들은 방아질할 곡식이 있는데, 홀로 우리만 없으니, 어찌 해를 넘길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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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 언제까지 혁신과 변화에 휘둘려 살 것인가?

어디를 둘러봐도 매일의 뉴스는 개혁과 혁신을 외친다. 무한 경쟁과 치열해 가는 이 시대에 살아 남는 길은 오직 이것 뿐이라고 한다. 의식의 개혁을 요구하고, 정치, 경영, 기술 혁신을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과감한 교육개혁과 문화 산업으로 선진국에 돌입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변화 하지 않으면 불안해 진다. 정보에서 뒤쳐지지나 않을지. 늘 좌불 안석이다. 이태백,삼팔선,사오정,오륙도,육이오(20대 태반이 백수,38세 퇴직,45세 정년,56세까지 일하면 도둑,62세까지 일하면 오적) 라는 벌거벗은 직업 사회에서 투쟁과 혁신으로 살아 남으라고 외친다. 현대판 고려장이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 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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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시대에 되돌아 보는 사르트르의 실존 철학

SNS 시대에 되돌아 보는 사르트르의 실존 철학

SNS, 블로그를 통한 개인정보 보호를 망각한 개인의 포스팅과 이를 보는 관음증적 타인과, 배후에 이익을 얻는 빅브라더의 후기 정보화 사회에 있습니다. SNS 시대. 시선과 타자의 관계에서 좋아요에 의해 권력관계가 형성되고 그 관음증적 시선이 권력이 되다 보니 타자의 시선에 SNS의 글들은 노예의 코드로 움직입니다. 사르트르는 말했습니다.  “타인의 시선은 감옥이다.” 그가 이렇게 말한것은 타인이라는 감옥으로부터의 탈출이 주체적인 실존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인간다울수 있는 것은 유일하게 실존의 추구에 있습니다. 주체적이고 실존적인 삶에 대한 갈망을 포기하는 순간 인간은 노예가 되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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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녀가 냄비를 두드리게 만들었나?

무엇이 그녀가 냄비를 두드리게 만들었나?

합법적으로 하는 시위 중에서 답답한 약자의 의견을 합법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유모차를 끌고 오거나,  강아지를 데리고 오는것은 일반 중산층의 원하는것을 전달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 한국에서도 유모차 부대 있었지.     브레멘의 악대처럼 음악을 연주하는것도 이것은 합법적이고 민주적이지만 그들의 간절한 소망을 전달하기 위한것이었다.   그리고 뿌뿌 부는것. 이것도 효과적인 시위 방법. 그러나 시위중에서도 냄비시위는 정말 시끄럽다. 냄비. 후라이팬을 뚜드린다.     이 냄비 시위가 유명하게 된것은 아르헨티나. 막판까지 엉망징창이 되던 아르헨티나 경제 상황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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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빠나다를 먹으며. 한국 가계부채 문제 통제 가능할까?

엠빠나다를 먹으며. 한국 가계부채 문제 통제 가능할까?

아르헨티나에서 이민온 친구에게 소개받은 엠빠나다 입니다. 이것을 먹으며 그 친구가 해줬던 아르헨티나의 집값 폭락 애기가 떠오르는 군요.         오래전 아르헨티나는 축복받은 은의 나라였습니다. 아르헨티나가 은이라는 말이걸랑요. 그렇게 잘나가던 아르헨티나는 가계 부채는 엄청나게 되고 양극화로 중산층은 공동화 되고 2집 중 한집은 실업자고 , 대통령은 말귀를 못알아 들어서 사람들은 냄비 뚜드리고 정말 엉망이었답니다. 네. 그랬답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습니다. 에이~ 그래도 잘 사는 사람은 잘 살지. 거기서 기회를 찾아 대박을 건지는 노력을 해야지. 그러자 그는 화내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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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끼들 ! 이라고 생각이 들게 만든 사건.

일본 **끼들 ! 이라고 생각이 들게 만든 사건.

나는 과거사 문제를 떠난다면 전반적으로 일본인들은 양질이라고 생각한다. 남 간섭 안하고 정직한 편이다. 일본인에게 이런 좋은 감정을 가진 나지만 이런 내가 화가 나서 이 **끼들 다 *져라 이런 생각이 든 적이 두번 있었다.   하나는 엘에이 공항 매점에서 심심을 면할 목적으로 허슬 잡지를 사서 나리타 공항으로 갔다. 근데 이것들이 공항에서 내 허슬 잡지를 보더니 뺏는거였다. 그때 나는 일본이 싫었다. 나쁜 놈들. 아직까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다니!!! 그래서 일본 지인에게 마구 화를 내었고, 지인은 키득 키득 웃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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