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Representation”, 독일어로 “Vorstellung”, 한국어로 “표상”이라 번역되는 이 용어는 서양 철학사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이 개념은 인간의 인식이 대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핵심 개념으로 등장하며, 특히 근대 철학에서부터 중요하게 다뤄졌다. 본 논문에서는 칸트와 들뢰즈의 관점을 중심으로 Representation의 철학사적 의미와 위치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두 철학자가 인간 인식과 세계 이해에 대해 제시한 상반된 관점을 논의하고자 한다.
2. Representation의 철학사적 기원과 전개
Representation은 철학사에서 **대상(object)**과 주체(subject) 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기본 틀이었다. 이 개념은 데카르트(René Descartes)의 **”Cogito ergo sum”**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지며, 인간이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을 매개하는 심리적, 정신적 활동을 지칭했다.
데카르트 이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와 같은 철학자들은 Representation을 **단자(monad)**의 인식 작용과 연결하며, 주체가 외부 세계를 어떻게 재현(re-present)하는지를 설명하려 했다.
Representation이 철학적으로 정교화된 결정적 계기는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에 의해 이루어졌다. 칸트는 이를 인간 인식의 구조적 한계를 규명하는 핵심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3. 칸트의 Representation: 인식의 틀(Vorstellung)
칸트 철학에서 **Vorstellung(표상)**은 인간이 대상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방식의 핵심이다. 칸트는 인간이 세계를 직접 알 수 없으며, 오직 **감각(Sinnlichkeit)**과 **오성(Verstand)**이라는 인식의 틀을 통해 형성된 **현상(Erscheinung)**을 통해서만 세계를 경험한다고 보았다.
- Representation의 정의: 칸트에게 표상은 감각적 경험과 사고의 종합을 통해 형성된 대상의 재현물이다.
- “물자체(Ding an sich)”와의 관계: 우리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우리의 감각과 범주를 통해 이해하므로, Representation은 대상의 본질이 아니라 현상적인 측면을 드러낸다.
칸트는 이렇게 말한다:
“Gedanken ohne Inhalt sind leer, Anschauungen ohne Begriffe sind blind.”
(생각 없는 내용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Representation은 감각적 직관(Anschauung)과 개념(Begriff)이 결합하여 세계를 이해하게 하는 구조적 기제로서 작용한다.
칸트의 Representation 체계의 의의
Representation은 칸트 철학에서 인간 인식의 한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이 대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체계는 인간의 사고를 고정된 인식 틀 안에 가두는 문제를 내포하며, 이는 현대 철학에서 큰 비판의 대상이 된다.
4. 들뢰즈의 Representation 비판: 차이와 생성(Difference and Becoming)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Representation 개념을 철학적 사유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간주하며 이를 철저히 비판했다. 들뢰즈는 Representation이 철학적 사고를 **재현(representation)**의 틀에 고정시키고, 새로운 가능성을 억압한다고 보았다.
- Representation의 문제: 들뢰즈에 따르면, Representation은 주체와 대상, 동일성과 재현이라는 이분법을 고수하며, 철학을 정적인 사유 체계로 제한한다.
- 차이(difference): 그는 차이를 Representation으로 환원하지 않고, 차이 그 자체를 존재의 본질로 삼는다. 들뢰즈는 말한다:”Representation은 차이를 지우고 동일성을 강요한다.“
들뢰즈에게 중요한 것은 대상이 어떤 표상으로 나타나는가가 아니라, 대상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되는 과정이다. 그는 이를 **”생성(becoming)”**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철학적 사유가 표상의 틀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5. 칸트와 들뢰즈의 비교: Representation의 철학적 전환
- 칸트는 Representation을 인간 인식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틀로 보았다. 그의 철학은 인간의 사고를 구조적으로 분석하고 체계화하는 데 중점을 둔다.
- 반면, 들뢰즈는 Representation을 철학적 사고의 한계로 간주하며, 이를 넘어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사유를 강조했다. 그는 Representation이 본질적으로 정체적이고 동일성을 강요한다고 보고, 이를 철학적 사유에서 배제하려 했다.
6. 결론: Representation의 의미와 현대적 재조명
Representation이라는 개념은 철학사에서 인간 인식과 세계 이해를 설명하는 핵심 역할을 해왔다. 칸트는 이를 통해 인식의 가능성과 한계를 규명했으며, 들뢰즈는 Representation을 넘어서는 사유의 방식을 제안했다. Representation은 여전히 철학적 논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현대 철학에서는 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접근들이 등장하고 있다. 칸트와 들뢰즈의 사유는 이러한 논의에서 상호 보완적이고 대립적인 역할을 하며, Representation의 철학적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