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날. 장군이 아침에 정자로 내려오니 여러명이 보고 하고 돌아감. 김경로와 박종남이 하루종일 활을 쏘고. 또 남해 현령등이 보고 하고 감. 장군은 여러 사람의 이름을 다 기록함. 한명 한명 행적도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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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亂中日記) 1594년 10월 6일
장문포로 선봉을 공격하게 함. 일본군은 “우린 평화를 좋아하니 싸울일이 없다”는 글을 땅에 꽃아놨다 함. 물론 이런 잔꾀에 속을리 있나. 왜군 한명이 투항.
난중일기(亂中日記) 1594년 10월 4일
적을 나오게 하기 위해 곽재우, 김덕령 위하로 육지로 공격하게 하고 선봉은 장문포에서 공격을 함. 바다와 육지에서 동시에 공격해 왜군들이 달아남.
난중일기(亂中日記) 1594년 10월 3일
맑은날이라 함. 장군은 장문포로 공격을 하려 했지만, 왜군은 나와 항전하지 않아서 어두워지자 칠천량으로 돌아옴.
난중일기(亂中日記) 1594년 10월 1일
계사년의 일기가 이 날에 없으므로 갑오년 1594년 10월 1일로 넘어간다. 10월1일 장군은 새벽에 출항. 영등포로 들어갔으나 왜군들은 바닷가에 정박하며 나오려 들지 않았다. 장군은 육지로 돌격하라고 하지 않음. 왜군들이 원하는 것이 육지로 오게 하려는 것일 테니까. 그러나 군관이 저녁 무렵 육지에 배를 대려 할때 왜군이 바로 들어와 불을 던져 태우려 했음. 군관에게 죄를 무겁게 물음.
난중일기(亂中日記) 의 계사년 9월 27일 탐구
이순신은 이때 일기를 못씀. 9월은 마음이 우울했던거 같음. 1일부터 공무본일, 술마신 일, 정도 기록하다가 15일에 장문의 기록을 마지막으로 1593년 9월은 15일 이후론 아무런 일기를 남기지 않음. 남기지 않은것인지 자료가 없는것인지 몰라도 이때부터 내년 이 되는 1594년 까지는 기록이 없음. 내 생각엔 이때부터는 일기를 쓸 필요도 없다는 결심의 실천의 시간인거 같음. 그런 근거가 마지막날 1593년 9월 15일은 많은 글을 씀. 그 전 까지 보통 한두줄이었는데 9월의 마지막날 긴 글은 일본군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들어 있으며, 앞으로 …
난중일기(亂中日記) 를 연재 하며
1주일의 주기가 7일 이듯 육십갑자의 주기는 60년이다. 올해가 그러고 보니 계사년(癸巳年) 이다. 1593년. 지금부터 420년 전은 완전수 7번의 갑자가 있던 해 이다. 모든 주기가 맞아 떨어지는 이 해는 이순신 장군께서 “만번 죽어도 한 삶을 돌아보지 않을 계책의 해” 라고 하셨던 고난 중의 해. 고난의 시기에 이순신은 오히려 만번 죽어도 후회 하지 않을 어떤 계책을 마련하신 해로 볼때 그의 국난 극복의 지혜를 살펴보고자 이 시기부터의 난중일기를 연재 한다. 이 연재는 난중일기의 계사년 부터 같은 날짜를 기준으로 …